美화장품기업 '메리 케이', 남성 주축사회에 힘찬 도전장

<월드 CEO 열전> 美國 코스메틱 ‘메리 케이 애시’

소정현 기자 | 기사입력 2015/02/22 [18:55]

美화장품기업 '메리 케이', 남성 주축사회에 힘찬 도전장

<월드 CEO 열전> 美國 코스메틱 ‘메리 케이 애시’

소정현 기자 | 입력 : 2015/02/22 [18:55]
45세 나이 단돈5천달러 화장품 회사창립
2013년 글로벌 매출액만 35억달러 상회

직접판매 고수 ‘뷰티컨설턴트’ 주축 성장
직원과 사람 존중문화…일관된 기업철학

2001년 한국진출 글로벌 10대 전략지사
다양한 글로벌 사회공헌…존경과 대귀감


 
▲ 45세 나이에 화장품 회사를 창립하여 여성 CEO의 전설이 된 메리 케이    


미국의 대표적 코스메틱 브랜드 중 하나인 메리 케이는 1963년 창업주인 ‘메리 케이 애시’(Mary Kay Ash, 1918-2001)가 45세의 나이에 단돈 5천달러를 투자해 댈러스에 소규모 화장품 회사를 창립한 것에서 그 연원을 같이한다.

텍사스州 댈러스에 본사를 두고 단 9명의 뷰티컨설턴트와 함께 여성 중심 기업의 새역사를 쓴 ‘메리 케이’는 1971년 호주에 첫 해외 지사를 개설 이후, 창립 50주년을 넘은 현재 미주와 유럽,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 35여 개국에서 250만 명 이상이 사업 대열에 참여하고 있는 가운데, 2013년 글로벌 매출액만 35억 달러를 상회한다.

메리 케이 애시는 美 기업사에 걸출한 여성 CEO로서의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한 선각자이었을 뿐 아니라 ‘인간 존중’의 기업 모토는 하나의 위대한 역사로서 현재까지 그 진가를 힘껏 구가하고 있다. 메리 케이 애시가 기업윤리와 여성권익에 혁혁하게 세운 금자탑을 집종 조망한다. <편집자주>


 
● 불혹 넘겨 창업…여성기업의 전설

메리 케이 애시는 여성 CEO가 희박한 시절인 1963년 불혹을 넘긴 45세 나이에 전 재산 5천달러를 투자해 ‘여성의 삶을 풍요롭게’(Enriching Womens Lives)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화장품 판매회사 뷰티를 설립하였는데 뷰티는 훗날 자신의 이름을 딴 ‘메리 케이 코스메틱으로 회사명을 변경하였다.

지난 반세기 이상 독특한 기업문화와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고품격 화장품의 연구 개발로 업계를 선도하고 있는 메리 케이는 미국, 스위스, 중국에 대규모 최첨단 공장을 둔 다국적 화장품 회사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2001년엔 드디어 한국에 진출하여 매출의 고공 행진을 기록하는 등 그 성장세가 괄목하다.

메리 케이 애쉬의 삶은 불가능을 극적 현실로 변모시킨 현대 여성사에 경이적 인물이다. 메리 케이가 아들 ‘리처드 로저스’와 함께 사업을 시작한 1963년은 대부분 경제 활동은 남성이 주도하던 상황이었다. 그 당시 여성이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되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녀는 45세까지 회사에 다녔는데, 매우 열성적으로 활동하여 판매 분야에서 경지에 오른 독보적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녀를 모든 여성들의 귀감으로서 전설적 반열에 오르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여성 차별에 과감한 전면전이었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불평등이 마침내 그녀로 하여금 회사를 박차고 나오게 만들었다.

25년이라는 오랜 기간 세일즈 비즈니스에 몸담았던 메리 케이 애시! 그녀가 직접 교육시킨 한 남성이 승진해 내셔널 트레이닝 디렉터인 본인보다 두 배나 높은 연봉을 받는 게 아닌가?

단 ‘여자’라는 신분으로 수많은 여성이 이 같은 부당한 처사로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 묵인할 수 없었다. “기필코 여성들이 당당히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세계적 기업을 만들겠어!” 그녀의 단호한 각오와 결의는 꿈을 향한 열망으로 출렁였다.

▲  메리 케이의 기업철학을 대변하는 여성의 삶을 풍요롭게(Enriching Womens Lives)    

 
 드디어 1963년, ‘꿈의 회사’가 세워졌다. 그러나 그 시작은 그녀의 거대한 꿈과는 대조적으로 너무 소박했다. 첫 그녀의 사무실은 고작 재활용 가구와 홈 메이드 커튼, 그리고 마트에서 산 금속 선반 하나로 꾸며진 환전구역 내 작은 오피스···.

메리 케이는 창업 1년 만에 20만 달러 매출이라는 경이적 기록을 세운다. ‘꿈의 회사’ 메리케이 코스메틱을 설립한지 세 달 반 만에 수익은 3만4천 달러를 넘어 손익분기점을 넘었고, 그 해 총 매출은 19만8천 달러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다음해 말 메리케이 코스메틱은 총 매출 80만 달러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게 됐다.

또한 1년이 지나 메리케이 본사는 주요 회사가 밀집된 ‘마제스티 드라이브가’(Majesty Drive)로 확장 이전했다. 메리케이의 가족은 2백 명에 이르렀고, 다음해엔 3천 명, 이듬해엔 1만 1천명으로 기하급수적 성장세를 달성했다.

겨우 50㎡ 규모의 사무실에서 9명의 판매원으로 출발한 메리 케이 코스메틱사! 이렇듯, 그녀는 종횡무진 전심전력 결과 수많은 것을 성취하였다. 메리 케이는 ‘포춘지’에 미국에서 가장 일하고 싶은 100대 우수 기업에, 여성들을 위한 10대 우수 기업에 선정되었다.

2001년 11월 메리 케이 애시 여사가 별세한 후, 아들이자 공동 창업자인 리차드 로저스(Richard Rogers)가 메리케이의 회장직을 이어 받았으며, 현재 메리케이는 매년 매출 기록을 갱신하며 폭발적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다.

그녀의 삶을 비추어 보면 성공을 보장 받는 삶이 아니라 매우 고단하기까지 했던 우리 여성의 삶이었다. 그녀는 인생과 사업이 처음부터 성공 가도를 달린 것은 아니었다.

일곱 살 때부터 직장에 다니는 어머니를 대신해 결핵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아야 했고, 고등학교 때는 전 과목 A를 받으며 의사의 꿈을 가졌지만 집안 사정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결혼하여 세 아이를 낳았지만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했고, 재혼한 회사의 행정사무를 맡아주었던 남편은 사업을 시작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청천벽력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주저앉지 않고 믿음으로 분연히 일어섰다.

▲ 메리 케리는 여성들이 재정적으로 독립하여 삶의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회사를 구현했다.   

 
● 고속 성장의 비결 ‘뷰티컨설턴트’

메리케이의 고속성장에서 주목해야 하는 독자적 요인은 직접판매만을 고수한다는 점이다. 회사와 뷰티 컨설턴트간의 계약서 1항에는 “메리케이는 메리케이 뷰티컨설턴트만을 통해서만 제품을 판매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훗날 메리 케이 브랜드가 널리 알려지면서 백화점에서 메리 케이 매장 오픈을 제안했지만 이를 거절하고 직접판매 방식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뷰티컨설턴트라는 직업을 통해 여성들의 사회참여 기회를 제공한 메리케이! 메리케이 뷰티 컨설턴트의 가장 큰 매력은 직장이 있어도 겸해서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며, 자신의 시간과 사업 계획에 따라 업무량을 개인이 조절 가능한데 있다. 또한 뷰티컨설턴트는 성공 목표와 고객층까지 모두 개인이 관리하는 토털시스템을 통해 자기 사업에 대한 열정과 책임감을 드러낸다.

메리케이 뷰티컨설턴트는 단순히 직접 방문하여 판매하는 방식이 아닌, 홈 파티 형식의 ‘뷰티 클래스’를 열어 고객을 초대하여 소비자들에게 단순히 화장품을 구매하는 것 이상을 선사한다. 그 자리에 모인 여성은 피부 상담부터 육아와 직장 문제까지 삶에 대한 전반적 고충을 토로하며 친밀한 교류를 나눈다.

이 자리에서 뷰티컨설턴트는 종합적 피부관리 가이드를 하고, 화장품을 직접 사용해본 후에 제품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 교감은 고객 친밀도가 단연 상승할 수밖에 없다.

뷰티 컨설턴트로 일하다 사업을 확장하면 독립 판매원의 ‘리더 세일즈 디렉터’가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내셔널 세일즈 디렉터’(National sales Director)가 되면 전 세계를 여행하며 메리케이에 처음 입문한 뷰티 컨설턴트에게 리더십과 상담 등에 대해 조언자 역할을 능숙하게 수행한다.

현재 전 세계에서 500여 명의 여성이 내셔널 세일즈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는데, 2014년 기준으로 한국에서는 4만2천여 명의 독립뷰티컨설턴트 중 내셔널 세일즈 디렉터 12명을 배출하였으며, 세일즈 디렉터(Sales Director)는 1,300명 정도이다.


● 진입장벽 허물고 ‘어엿한 경제주체’

▲ 소녀 시절의 메리 케이     
세계적 화장품 기업으로 급성장한 매리 케리! 직원들은 자신들이 다니는 회사에 대해 절대 그만 두고 싶지 않은 직장, 다시 태어나도 다니고 싶은 회사라는 평가에 일절 주저함이 없다.

그녀가 주목을 받은 건, 불혹을 넘어선 나이에 그리고 여성 CEO가 드문 시절에 창업의 대모험을 시도하여 성공 반열의 족적 못지않게 무엇보다 인간 중심의 독특한 경영에 기인한다. 메리 케리는 자신과 함께하는 모든 여성이 개인적으로 성장하고 재정적으로 독립하여 삶의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회사를 꿈꾸었고 이를 구현했다.

메리 케이는 여성의 사회 참여는 경제적인 독립 외에 풍요로운 삶의 실현과 자신감 회복이며 그것이 인생에 있어서 매우 값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리고 그녀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성 고유의 직관력, 예지력, 일관성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위대한 자산이다.…또한 여성의 미덕으로 우리는 오래도록 존중받아 온 성실, 사랑, 정직과 같은 장점을 개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메리 케이가 직원과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신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사람을 만들 시간이 없다.”며, 모든 인간에게는 저마다의 존재 이유가 있다고 굳게 믿었다. 이 회사 창업자인 메리 케이 애시는 이를 기업 철학으로 토대로 삼고 솔선수범했다.

특히 메리 케이 애시는 회사경영에 있어 무엇보다 모든 비즈니스 주춧돌로서 바이블의 마태복음 7장 12절에 나오는 ‘남에게 대접 받고 싶은 대로 먼저 남을 대접하라’는 ‘골든 룰’(golden rule)의 위대한 실천자였다.

그녀는 당신이 만나는 사람마다 "제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끼고 싶어요." 라고 쓰여 있는 목걸이를 달고 있다고 생각해라. 영업에도 성공할 것이고, 인생에도 성공할 것이다.”며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경청을 중요시했다.

그녀의 저서 ‘The Mary Kay Way’에서 “내가 누군가와 대화를 한다면 “우리 둘만 있는 것처럼 그를 대한다. 경청만큼 상대방을 존중해 주는 방법은 없다.”면서, 늘 직원들의 의견에 귀 기울였다. 사소한 메일이나 메시지에도 반드시 회신을 했다. 작은 제안일지라도 격려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또한 메리 케이는 "열정적으로 행동하면 당신은 열정적이 된다. 열정이 없이 그 어떤 위대한 것도 이룰 수 없다"고 강조하면서, 긍정적 사고를 무척 중요시했다. 그녀의 이러한 태도 덕분에 이들은 더욱 열성적이 되었고 실적은 급증했다. “열정은 기적을 낳는다. -메리 케이의 아름다운 성공신화-”은 한국에서도 번역되어 애독되었다.


● 직원에 ‘최상을’…자선사업 ‘선도적’

매년 9월 13일은 회사 창립 기념일로 댈러스 전체가 들썩인다. 이에 앞서 매년 7월이면 댈러스 도시 전체가 축제 열기에 휩싸인다. 이유인즉, 전 세계 35개국에서 지난 한 해 동안 우수한 성적을 낸 뷰티 컨설턴트가 메리케이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면서 문전성시를 이룬다.

메리 케이는 직원들을 든든한 우군으로 삼기위해 넉넉한 판매 수수료와 후한 포상, 지속적인 교육 훈련을 제공했다. 훌륭한 인재는 언제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직원들이 만족할 만한 조건을 충족시키려 노력했다.

메리 케이는 직원들을 극진히 예우했다. 메리 케이 코스메틱의 상징이 되어버린 ‘핑크 캐딜락’이 대표적 실례다. 1969년부터 높은 판매 실적과 리더십을 보여준 뷰티 컨설턴트에게 일명 ‘신데렐라 선물(Cinderella Gifts)이라 일컫는 독립성과 자주성의 표상이자 핑크빛 미래를 함축하는 ‘핑크 캐딜락’을 선물하기 시작했다.

메리 케이는 사회공헌활동에도 남다른 철학을 지녔다. 남에게 무언가를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베풀고 다가서라는 철학으로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믿어왔다. 그녀는 특히 환경보호와 자선에 남다른 기업 철학을 고수해왔는데 다양한 노력의 성과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메리케이는 일절 동물 실험을 하지 않고 제품 포장도 스티로폼 대신 물에 젖으면 없어지는 옥수수나 전분으로 만든 재료를 사용한다. 또 소비자가 다 쓴 콤팩트 용기를 가지고 오면 나무 한 그루를 심을 수 있는 비용을 책임진다.

그리고 메리케이는 창립 이래로 지금까지 50여 년간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져 사용되기 훨씬 오래 전부터 사회공헌활동에 헌신했다. ‘나눔’은 메리케이 기업 유산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핵심 기업 이념인 셈이다.

이러한 타인에 대한 배려와 도움은 이제 회사 경영 철학을 넘어서 미국 전역에 자선과 기부 문화로 확장되었다. 특히 창업자의 뜻을 따라 어린이와 여성을 위해 댈러스 보호소, 구세군, 적십자, 미국 암센터 등 여러 단체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1996년 설립한 메리 케이 애시 자선 재단은 손자인 라이언 로저스(Ryan Rogers)가 상임 이사직을 맡고 있는데, 매년 5백만 달러의 자선기금을 암 연구 및 여성 폭력 방지 기금으로 내놓고 있다.

이러한 기부 문화는 직원들에게도 전해져 ‘사랑의 집짓기 운동’ 캠페인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메리 케이 애시 여사의 이 같은 철학을 담아 메리케이가 진출한 많은 나라에서 글로벌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아름다운 실천’이라는 모토 아래 다양한 사회공헌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메리케이코리아에서도 2008년부터 사회공헌 립스틱 판매당 1,000원을 적립해 ‘핑크 드림 도서관’을 지속 후원하고 있다. 2014년에는 ‘저니 오브 드림’(Journey of Dreams) 핸드크림 1개 판매 당 1000원의 수익금을 적립하며 ‘핑크 드림 도서관’ 후원 사업을 진행했다. 한국에서 핑크 드림 도서관은 2008년 1호점인 ‘삼육 재활원’을 시작으로 2014년 11월 21일 28호점을 광주 무등종합사회복지관에 개관했다.

▲  창립 50주년을 넘은 코스메틱 ‘메리 케이’는 전 세계 35여개국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다.     

 
● 메리 케이 코리아(Mary Kay Korea)

2001년 3월 한국에 전격 진출한 메리케이(Mary Kay) 코리아! 메리케이의 글로벌 10대 전략 지사 중 하나인 메리케이 코리아는, 올해로 14주년을 맞아 호주, 대만, 중국, 홍콩 등을 위시하여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핵심시장으로 성장했다.

특히 2009년 4월 취임한 노재홍 메리케이 코리아 대표이사는 글로벌 화장품 마켓과 방문판매 비즈니스에 심대한 이해와 전문적 경험을 바탕으로 메리케이 코리아를 일신하면서 국내에서 4만2천여명의 뷰티 컨설턴트를 중심으로 마케팅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며 급신장 하고 있다. 특히 일정 자격요건을 갖춘 사업자들에게 독립뷰티컨설턴트 쇼핑몰을 개설하여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이러한 공로와 귀감에 메리케이 코리아는 지난 2월 5일 글로벌 인사관리 전문컨설팅 업체인 ‘에이온휴잇’이 선정한 2015 한국 최고의 직장에 선정되었는데, 여성과 가족 친화적인 사회공헌활동(CSR) 등 전체적 부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메리케이 코리아는 2013년 고용노동부 주관 남녀고용평등 우수기업으로 선정돼 고용노동부 장관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노 87길 36 도심공항타워 1203-5, TEL 02-2016-7770











원본 기사 보기:해피! 우먼
  • 도배방지 이미지

메리 케이 미국 화장품회사 관련기사목록
광고
문화·사회 많이 본 기사